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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은 패션이에요, 김영진 디자이너

BY 인혁 에디터

디자이너 김영진에게 한복은 패션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그 말을 증명해 내기 위해, 20년에 가까운 오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어릴 때 취미로 한국 무용을 배우던 언니의 한복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부터, 루이비통의 슈퍼바이저를 지나 두 한복 브랜드를 이끄는 대표가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김영진이 만드는 한복은 이제 문화를 넘어 하나의 패션이 된다.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안녕하세요, 한복 디자이너이자 코스튬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의상을 디자인하고 있는 김영진입니다. 


저는 전통이라는 것, 우리 것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보니 전통 탈춤도 배우고 소리도 배우러 다니곤 했어요. 그중에 하나가 한복이었어요. 우리극을 하기도 했으니, 한복을 자연스럽게 입을 수밖에 없었죠. 


또 어릴 때는 언니가 한국 무용을 배워서 한복 의상을 많이 보기도 했어요. 그걸 가지고 놀이도 하고, 패션쇼도 하고 그랬죠. 그런 기억들이 모여서 한복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그때만 해도 젊은 사람이 한복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개척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남들이 안 가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재밌고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예술가가 꿈이었던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연극, 서양의 연극보다는 우리 극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우리 극을 공부하게 되면서 한복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어요. 


공연이라는 거는, 연극 무대는 사실 돈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내가 먹고살아야 하고, 또 저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자연스럽게 패션으로 가게 됐어요. 패션을 공부한 것도 아니니까, 필드에서부터 시작했어요. 


회사에 어찌어찌 취직을 했는데, 생각보다 제가 패션과 되게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명품 브랜드 쪽에서도 빨리 성장을 할 수 있었고, 외국에도 자주 나가서 바잉도 하고. 여러 가지로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먹고살기 위해 패션을 했다 보니, 한복은 하나의 취미로 생각했어요. 마치 취미로 요가를 하는 것처럼. 지금은 돌아가신 무형문화재 제11호인 침선장 박광훈 선생님한테 일주일에 한 번씩 손바느질로 배냇저고리부터 배웠어요. 제가 패션 쪽에서 오래 일을 했다 보니, 명품 브랜드에서 슈퍼바이저로 몸을 담기도 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이제 믹스가 되더라고요. 


기존에 한복을 했던 사람들은 한복으로만 그 세계를 봤다면, 저는 패션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한복은 패션인데 왜 이렇게 자꾸 가둬 놓고 레슨만 하고 있지?’ 의문을 들면서 ‘김영진화’ 시킨 거죠. 



이렇게 아이덴티티가 확실한 브랜드가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대표로 있는 차이 김영진은 맞춤 전통한복 브랜드, 차이킴은 레디 투 웨어 한복 브랜드 즉 기성복을 만드는 브랜드에요. 전통 한복을 10년 정도 했을 때, 손님이 원하는 스타일대로 해드려야 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기가 힘든 거예요. 


우리나라 저고리만 하더라도 붕어배래, 직배래 등 여러 형태의 디자인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직배래를 만들 때, 이게 전통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자신들이 보고 있는 것만 전통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같은 한복이라도 15세기, 16세기, 17세기, 18세기 다 달라요. 결국 한복은 패션이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패션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복’, ‘전통’. 이렇게만 생각하는 거죠. 이건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한복이라는 것도, 전통을 통해서 내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를 표현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차이킴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손님이 있어요.


차이 김영진은 손님들의 요구에 따라 제작하는 맞춤 브랜드다 보니, VIP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세요. 가격대도 높다 보니 젊은 친구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브랜드에요. 


그런데 어느 날 예일 대학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다는 장학생이 찾아온 적이 있어요. 2학년, 3학년 정도 되는 친구였는데 자기가 하는 공연에서 한복을 입고 싶다고 찾아왔어요. 그 친구와 대화를 하면서 예일대를 들어간 후 뭐가 달라졌냐는 질문을 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예전의 자신은 바이올린을 하는 이유가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남을 위해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행복을 주기 위해 한다는 거예요. 


아마추어는 나를 위해서 하고, 프로는 남을 위해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 친구는 정말 프로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제가 이제 막 시작하는 대학교 2학년 학생한테 본 거 잖아요. 굉장히 놀라웠어요. 또 재밌는 건 많은 분들이 저한테 오셔서 디스카운트를 해달라고 하시는데, 그 친구가 저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아세요. 디스카운트를 해주지 말라는 거예요, 한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 친구가 재벌의 딸도 아니고, 장학금을 받고 다니는 평범한 학생인데 진짜 돈을 쓰는 법을 알더라고요. 저한테는 디자이너로서 최고의 리스펙트였던 거죠. 그래서 너무 고마웠고, 그 친구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돈으로 재단하지 않는 것, 저는 그게 예술가인 것 같아요. 음악도 우리가 먹을 수 있어서 음악을 듣는 게 아니잖아요. 아름다움을 위해 그 가치를 알아보는 거죠. 



제품의 핵심과 아이덴티티를 아는 것이 중요해요


제가 있었던 루이비통은 LVMH가 이끄는 세계 최고의 브랜드에요. ‘전통’이라는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를 LVMH라는 그룹이 산 후부터는, 다음 세대에 맞게 전통과 아이덴티티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들을 했어요. 기존에 브랜드가 가진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계속 만들어내는 거죠. 디자이너도 마찬가지로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고, 고여있지 않아야 해요. 


한국에서는 ‘이게 팔리냐, 안 팔리냐’를 가지고 이야기한다면, 외국에서는 팔리는 것보다 어떤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이걸 만들었는지에 집중해요. 만약 옷이 조금 무겁게 나왔다면, 왜 옷이 무거워야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굉장히 잘해줘요. 예를 들어서 오히려 옷이 무거워서 웨이트 하기 때문에, 왜소한 사람이 가져가면 멋있어 보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저는 뭔가를 설립한 사람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시현하다도 이렇게 사진으로서 무언가를, 누구도 생각해 내지 못했던 거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크리에이티브를 잘 유지해 가려면 정말 스마트하고, 브랜드를 사랑하고 함께 갈 수 있는 젊은 피들이 잘 순환이 돼야겠죠. 




저에게 한복은 ‘정체성’이에요


지금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에서 ‘한류’라는 전시를 하고 있어요. 표가 다 매진될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많아요. 저는 서양 사람들이 참 영민하다고 느끼는 게, 자신이 아닌 다른 세계에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는 거예요. 


그 궁금증은 결국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 거거든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그래서 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남들한테 우리를 보여주기만 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도 그만큼 남들을 알아야 해요.


문화를 보여준다는 건, 그들이 우리를 무시하지 않고 우리를 존중하고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20대 때 우리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람들이 우리 것을 너무 모르고, 무시하는 게 싫어서였거든요.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 것에 대한 멋있음을 이제 발견하고 알게 됐으니 남이 나를 사랑하는 것에 계속 취해서 나를 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것을 지키려면 제대로 보여줘야죠


중국에서 한복을 자기네 문화라고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는 이럴 때일수록 크리에이티브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한복을 우리 것이라고 보여주기만 하고, 독창적이지도 않은 한복을 보여준다면 그냥 ‘전통’이 되는 거죠. 


사람이 매력적이려면, 언어라든가 성격이라든가 모든 게 갖춰져야 하잖아요. 한복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것을 지키려면 제대로 보여줘야죠. 투자를 해서라도 제대로 한 번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똑같은 서양이라도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있잖아요. 프랑스는 굉장히 디테일이 있고, 스페인은 굉장히 거친 것 같지만 어떤 스케일이 있고. 각자의 그런 개성들이 있단 말이죠. 동양 삼국도 그런 특징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중국은 대륙처럼 화려하고 광활하고, 일본은 굉장히 섬세한. 우리의 무기는 ‘자연스러움’이에요. 그런 자연스러움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어떤 미적 감각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디자이너는 책을 읽어야 해요


요즘에는 SNS나 유튜브를 통해 지식이 방대해졌잖아요. 그런데 결국 책을 많이 읽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영화는 술이고, 책은 물이다’라는 글을 보기도 했는데, 맞는 이야기예요. 특히 디자이너들은 비주얼적인 것을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영화는 연출이 보는 세상을 던져주는 걸 우리가 보는 거지만 책은 내가 그걸 보면서 상상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해요. 


그다음에 또 책만 많이 읽어서 되는 게 아니거든요. 디자이너는 작가가 아니잖아요. 디자이너는 삶이랑 같이 가야 해요. 사실 모든 직업이 다 삶을 모르면 안 돼요. 삶을 알려면 굴러야 해요. 어떤 걸 알기 위해서 노동의 시간을 가져야 된다는 거죠.


디자이너가 뭐부터 시작하냐면, 바로 정리예요. 정리부터 시작을 해야지 어떤 소재가 있고 그런 것들을 취합을 해서 내가 퍼즐처럼 이용할 수 있어요. 만약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그냥 돈만 받고 마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손님이 나와 대화하면서 굉장히 좋은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다시 오게끔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해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전 그 사람이 굉장히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정리를 하면서도 이 하나를 치우는 게 아니라, 주변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걸 왜 치우는지 알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가 있어야 해요. 그런 게 훈련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이 일을 진짜 재밌게 하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저는 디자이너니까, 제가 상상한 패션쇼를 현실로 만들고 싶어요. 정말 사람한테 감동을 줄 수 있는 패션쇼를 하는 게 제 꿈이에요. 2016년에 신라 호텔 영빈관에서 패션쇼를 연 적이 있는데 그때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이 봄날의 한 꿈을 꾼 것 같다고. 그런 패션쇼를 몇 번이라도 제가 기력이 되는 한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디자이너는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크루들이 있어야 하고. 되게 멋있는 크루들하고 멋있는 작업을 같이 창조적으로 만들어 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반짝반짝한 아이디어가 나한테 들어오고 그 아이디어에 살을 붙여서 어떤 뭔가를 만드는 것. 


나 혼자 너무 일방적으로 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일방적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못해 먹겠다’가 아니라, ‘진짜 재밌다’ 하면서 할 수 있게, 그게 제 꿈이에요.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패션을 시작할 때는 잡지사 기자들이 어떻게 그 패션을 표현해 주는지, 그런 것들이 되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기자의 역할보다는 SNS의 역할이 더 큰 거예요. 그러니까 변화가 되게 많은 거죠. 또 옛날에 저는 제가 사람을 좋아하고, 오픈 마인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굉장히 샤이한 사람이고, 사람을 만나는 게 살짝 두렵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더라고요. 


나의 신체, 정신의 변화를 겪고 세상의 변화를 겪잖아요. 그러니까 매일이 위기죠. 그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극복해야겠다’가 아니라, 극복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매일 투쟁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이 브랜드를 잘 이끌어갈지, 못 이끌어갈지 모르겠지만 투쟁을 하면서 하는 거예요. 내가 나한테 솔직해지고, 진실해지고, 후회 없이 하기 위해. 


남들은 다 그렇게 타협하고 갈 때, 타협하지 않고 제 스스로한테 굉장히 잔인하리만큼 솔직한 거, 그런 게 제 원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은 사람들의 관심이 낯선 김영진이 시현하다 매거진의 제안에 기꺼이 응해주었다. 본인이 직접 지은 옷을 입은 채. 디자이너가 아닌 모델로서 카메라 앞에 선 김영진의 모습은 누구보다 진실되고, 후회 없는 모습이었다. 


문화에서 패션으로서의 한복의 도약,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달려왔던 시간들을 마치 이 사진 한 장에 모두 담아내겠다는 듯이, 뜨거운 조명 아래 쉴 새 없이 셔터 소리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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